10월 한 달간 영상, 페인팅, 설치를 사용해 작업하는 부산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김은지 작가의 인터뷰가 스페이스 위버멘쉬에서 진행되는 전시의 일환으로 소프트 포커스 홈페이지에서 진행됩니다.
영상, 사운드, 회화 설치를 아우르며 작업하는 김은지는 시각을 기본 감각으로 하는 미술에 의구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다. 그리지 않는 행위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나 이미지가 없는 회화의 가능성 등 근본적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S/F: 김은지 작가의 작품을 보다 보면 원래는 그림을 그렸지만 점차 그 그림을 작업 속 질문의 대상으로 삼고 작업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더 나아가 미술 자체에 대한 모순점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김은지 작가가 작업하며 마주하는 모순은 무엇인가요?
EJ: 제가 여전히 끊임없이 마주하는 모순은 ‘나’라는 사람이에요. ‘나’라는 한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소심한 반항심, 모순적인 성향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성 또는 방어 기제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으레 그럴 것이라고 믿는 상투성에 저만의 방식으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게 제 작업의 시작점이자 모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어릴 때부터 기존의 미술 교육 시스템 안에서 굉장히 안전하게만 교육을 받아왔고, (물론 현재도 미술 교육 시스템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입장입니다만) 그런 틀 안에서 저의 문제의식을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또 안전하게 맞추어 가려는 안일함의 이중적인 태도가 너무나 익숙한 미술이라는 제도 또는 미술 자체에 대한 의심과 반성으로 나아갔어요. 제 자신을 그리고 작업을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상태의 무언가로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S/F: 작가님의 포트폴리오 중에서 '작업실에서'라는 작품이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머릿속의 생각을 영상 속 텍스트로 접하는 작업인데, 그리는 행위가 회화가 되는 게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속마음과 화가가 만들어내는 소리 자체가 회화가 된다는 점에서 재미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 텍스트 중에 ‘아 그냥 해, 망하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부분은 작가가 가지는 내적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는데요, 그림을 그릴 때의 이 망하기 밖에 더 하겠어의 태도 혹은 정신은 설치를 바탕으로 하는 현재의 작업에서 발현되고 있나요? 미술 작가로서 어떠한 태도로 미술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J: 창작 과정 자체가 미술 작품으로서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최근에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같은 창작자로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작업실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더라도 생산적인 결과물(작가 본인 기준에서)을 얻을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보니, 과거엔 ‘아, 결국 오늘도 아무것도 못했네, 안 했네.’ 하는 그 무기력한 시간이 정말 불안했어요. 하지만 작가 자신이 아닌 관람객들은 전시장에서 결과물을 보고 그러한 시간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죠. 사실 작가의 개인적인 내적갈등이나 연약한 부분들 드러낸다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기나긴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선택된 결과물만이 작업이 아닌, 작업하며 보내는 시간과 생각, 태도 자체가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페인팅을 하며 붓을 언제 내려놓을지 결정하는 것이 작가의 권한이듯, 완전함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종종 불완전함이나 실패 그 자체를 거침없이 펼쳐 보이려고 해요. 그리고 거기서 발생한 또 다른 질문을 이어갑니다.
S/F: 이번 전시 ‘친절한 침묵’은 최근작 ‘Timeline_Water Flow’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으로 이루어진 듯합니다. 침묵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 상태를 회화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자면 회화 역시 침묵하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혹은 그 말하기의 방식이 소리로 발화되는 ‘말하기'가 아닌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J: 이번 전시 ‘친절한 침묵’ 타이틀은 옥타비오 파스 ‘시’를 읽고 떠올렸어요. 옥타비오 파스는 시가 머무는 곳이 ‘사이’라고 적었는데, 저는 ‘사이’라는 감정적, 공간적 층위가 침묵의 그것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말에 침묵이 스며 있고, 침묵에서 말을 읽어낼 수도 있듯이, 말과 침묵 사이에 여러 층위의 마음이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 ‘사이’에서 배회하는 회화와 영상의 상태는 침묵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S/F: 이번 전시는 회화, 영상, 설치로 이루어진 전시인데, 그 요소들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만 서로를 상쇄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어요. 영상은 회화를 닮아있고 회화는 영상 옆에 설치되어 회화로서 받아들여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듯합니다. 거울 또한 성질 자체가 자신의 이미지가 아닌 다른 이미지를 반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요. 영상과 회화, 그리고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거울의 관계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EJ: 서로 다른 다양한 시점을 가지고 있는 매체들이 이미지, 회화를 중심으로 공유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전시를 전체적으로 하나의 큰 흐름, 흐르는 이미지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작업에서 처음 쓰게 된 거울, 이런 일상적인 오브제는 이미 스스로의 기능이나 맥락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가 변화 혹은 변용하는 측면에서 맥락을 자연스럽게 가져올 수밖에 없는데요. 모니터 위에 설치된 캔버스 나무틀에 양면으로 천을 짜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전시를 감상하는 동선에서 어느 순간 또 하나의 그림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캔버스의 양면은 반사되고, 비치는 거울의 기능을 가져와 구성했어요. 그에 반해 마주하게 되는 회화와 영상 속 이미지들은 다른 접근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어요. 완결된 상태로 놓여 있지만 모호한 형태나 붓질, 초점이 나간 영상은 시각적인 몰입감을 방해합니다. 모순적인 것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거울의 기존 맥락과는 상반된 상태인 거죠.
S/F: 설치된 영상은 여러 개의 레이어가 통합된 우리가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어떤 세상 혹은 픽셀화된 영상 안에만 존재하는 세상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영상 안에 등장하는 푸티지들은 어떻게 선택되나요?
EJ: 사실은 카메라를 들었을 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간혹 하지만 이미지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각각 작업마다 다른 것 같아요. 내가 현재 보고 있는 것, 하지만 한 번에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하나로부터 보기 어려운 여러 가지를 분리하여 인지할 때,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내가 앞으로 볼 것을 구성하는 것이 선택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응시하고 있는 것이 가지고 있는 형태도 있고, 색감도 있고, 움직임도 있고, 기능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딱 만나는 게 있을 때 선택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S/F: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공유하고 싶은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제 전시를 보시면서 예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해하거나 전달받는다는 기대감으로 감상하시기보다는 작품을 보면서 사유가 발생되는 지점을 느껴보시길 바라요. 그런 측면에서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했던 질문들을 한번 같이 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작업하고 전시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질문들이 나와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사실은 더 의미 있는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생겨나는 질문들을 쫓아갈 생각이에요.
최근 다시 페인팅을 시작하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림으로 존재하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닌, 물론 그려낸 행위가 있고 그린 흔적은 있지만 그 흔적이 다른 의미로 존재하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생겼어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