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부터 키오스크 트레이닝 센터 Kiosk Training Center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된 김윤호 작가의 개인전 ≪뻥이요~ Bbung-iyo~≫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조각, 설치, 드로잉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때에 따라 적절한 매체와 표현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경계와 자유’, 그로 인한 가벼운 삶에 대한 성찰. 모든 것이 상호작용의 관계를 맺고 있기 에 고찰되는 ‘관계와 생성’. 이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작가의 말
S/F:
‘뻥이요~’라는 전시 제목은 90년대에 유아기를 보내고 초등학교를 입학한 저에게는 뻥튀기 아저씨가 생각나기도 하고 뻥이야ᄏ 식의 허무한 개그가 떠오르기도 하는, 향수가 있는 제목 같아요. 긴장을 하고 있다가 뻥하고 튀어버린, 알맹이는 비어있지 만 터짐으로써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 뻥튀기가 갑자기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 고요. 뻥이요라는 어떠한 작업 과정을 통해 태어난 제목인가요?
YH: 이번 전시는 ‘나’에 대한 접근입니다. 종교와 학문의 영역에서는 나와 나에 대한 해체작업 및 그 너머로 진입한지 오래되었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는 여전한 나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그로 인한 경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더욱 더 그래지 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허구와 그 허구가 터지는 소리 등의 다의성을 함축하 며 표현할 수 있는 ‘뻥’이라는 것이 불현 듯 떠올랐습니다.
질문에서 뻥튀기 아저씨를 언급하신 것처럼 제가 나이가 점점 들수록인지는 모르 겠지만, 저는 요즘은 보기 힘든 어릴 적 추억이나 경험에 대한 상기, 사투리 등을 체험할 때 즐거움을 느낍니다.
S/F: 통유리문 위에 붙여진 공 모양의 시트지를 반으로 가르며 전시장을 들어서니 마치 장난기 가득한 아이의 실험실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작가가 직접 만든 것과 공산품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만나 이루어지는 전시처럼 보이는데요.
전시에 포함된 요소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나요?
YH:
저는 전시를 구성할 때, 요소(작업) 간의 어떠한 관계를 의식적으로 염두하며 진행 하진 않습니다. 저의 축적된 경험과 그에 따른 시선이 그 관계성을 충분히 자연스럽게 이끌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서의 경험은 의식적, 무의식적 측면이 혼재된 상태라 봅니다.
이번 전시에는 장난감이 꽤 많이 활용이 되는데, 그 중에서 물에 담그면 커지는 물질이라던가, 만화 포켓몬스터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볼과 몬스터 등은 이번 전시에 서 다루는 ‘나’와 ‘경계’에 대한 접근을 마음에 두다보니 불현듯 떠오르거나 생활에서 캐치하게 되면서 활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알리익스프레스를 처음으로 활용해보았는데, 제가 원하는 바를 AI가 잘 유도해줘서 흔쾌히 산 장난감들도 있습니다.
질문에서 말씀하신 ‘서로 어떤 관계’인가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 역시 뚜렷하게 말씀드리기 어려우며, 다만 저의 가벼운 느낌과 반응에 의한 선택과 그 집합으로 봐집니다.
S/F: 김윤호 작가는 영상, 페인팅,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가지고 작업하는 있는데요. 작업에 따라 매체는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나요?
이번 전시는 퍼포먼스가 있을 것만 같은 설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이번 전시에는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YH: 작업에 따른 매체 선택은 너무나도 뻔한 답변이겠지만, 떠오르는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그 적절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결정됩니다. 어떠한 규칙이나 방법적 접근을 정해놓은 것은 특별히 없습니다. 때마다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풍선입니다. 사실 전시의 초안에는 풍선을 부는 것에 대해 모터를 활용하려 했으나, 여러 가지 조건상 실현의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풍선을 관객이 직접 부는 형태로 전시를 진행하고자 하였으며, 풍선의 선택과 어떤 도구로 풍선을 불 것인지, 풍선을 얼마만큼으로 불 것인지 또는 풍선을 터트릴 것인지 또 아니면 풍선에 손도 되지 않을 것인지 등의 관객의 반응이 사실 궁금하긴 합니다. 이러한 관객의 다양한 퍼포먼스와 그에 따른 전시풍경과 그 변화가 이번 전시의 가변적 퍼포먼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S/F: 전시를 보다 보니 전시 제목인 뻥이요가 다시 떠올랐어요. 예술가가 뻥이라고 하니, 마치 자신의 예술을 싸구려 뻥튀기나 시시한 농담처럼, 듣고 잊어버리는 뻥으로 생각해 달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관해 작가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관객과 작가와의 관계,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은 어떤 것인가요?
YH: 예술에 대한 비판보다는 우리의 삶에 대한 비판과 반성, 그에 따른 나의 무아로의 확장을 상상하고 기대하며 준비한 전시입니다. 특별히 예술이 어떠하다는 것에 대해 정의내리거나 고정화시키거나 비판하는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고정하는 것을 즐기진 않으나, 예술은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표현해보는 것 정도로 생각이 듭니다. 형식이나 내용에 의한 국한보다는, 이렇게 얘기를 하면 모든 것이 예술이다라는 다소 무책임한 지점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고 떠오르는 것을 글로 적어보거나, 몸짓해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등의 어떻게 보면 2차적 행위가 예술인가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인간의 미메시스(아도르노 입장)나 편집능력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저의 미대입시 시절의 디자인과를 준비하던 친구들이 하던 파트인 ‘발상과 표현’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예술은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할 수 있는, 뭐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S/F: 뼈 있는 농담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에 우리가 들여다볼 만한, 고심해 볼 만한 것이 있다는 뜻이겠죠. 저는 농담을 너무나 진지하게 던지고, 진심을 아무것도 아닌 듯이 말하는 태도의 작업에 왠지 마음이 가곤 해요. 김윤호 작가도 이러한 태도를 공유하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때로는 재미없던 농담이 진지한 태도 때문에 웃겨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죠. 작가는 어떠한 태도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나요?
YH: 제가 저를 떠올리고 돌아보았을 때, 농담보다는 제가 하는 것은 그냥 헛소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헛소리라는 것은 부정적이거나 냉소적인 의미로 다가갈 수도 있지만, 사실 의식치 않고 던지는 헛소리는 저에게 진심에 가깝습니다. 마치 이성이나 계산 너머로 뻗어나가는 마인드맵 같은 것이지요.
어떠한 작은 것에 느낌을 받고 쓸데없이 집중하고 그것에 대해 전개해보는 것이 저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비효과, 프랙탈, 양자얽힘, 사사무애와 같이 이 미확률과 상호의존성의 이야기들이 과거 동양철학에 다분했고 현대에는 과학적으로도 판명된 상황에서, 그러한 저의 태도는 나름에 가치와 명분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장자와 나비가 끝에 가서는 꿈이었고 장자는 장자, 나비는 나비로 인식이 되는 지점에 이르기도 하지만, 산은 산->산은 산이 아니다->다만 산은 산이다로 이어지는 전개를 우리가 의식적, 이성적으로만 접근한다면 해석의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장자와 혜자의 물고기 이야기도 떠오르네요.
S/F: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미술이라는 영역에서의 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한 관심입니다. 제가 동양철학 쪽을 즐기면서도 글로벌한 통합적 사고와 그에 따른 분별심의 끊어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번 전시를 그러한 마음으로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좀 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백이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경계없는 관계와 오히려 더 큰 진정한 나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생각을 줄이고, 우리 모두 자신을 ‘뻥!’ 해 보아요. 진심 펀치!